〔정성수 칼럼〕 술은 잘 마시면 보약, 잘못 마시면 독약

  • AD 내외매일뉴스
  • 조회 35
  • 2026.07.24 06:52
  • 문서주소 - http://post.ndaily.kr/bbs/board.php?bo_table=news9&wr_id=47
 
술은 기쁜 날에는 축배를 들게 하였고, 슬픈 날에는 눈물을 함께 삼키게 한다. 결혼식에서는 행복을 축원하는 술이 되고, 장례식에서는 고인을 보내는 마지막 잔이 된다. 농부에게는 하루의 피로를 씻어 주는 피로회복제가 되고, 선비에게는 시심詩心을 일깨우는 약주가 된다. 친구 사이에서는 우정을 이어 주는 든든한 다리가 된다.
 
하지만 술은 사람의 삶을 떠나 존재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술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같은 술이 어떤 사람에게는 보약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독약이 된다. 그 차이는 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술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과 절제에 있다.
 
옛사람들은 술을 백약지장百藥之長이라고 했다. 모든 약 가운데 으뜸이라는 뜻이다. 물론 술을 많이 마시라는 의미가 아니다. 적당한 술은 혈맥을 부드럽게 하고 마음을 열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물어 주는 역할을 한다. 예부터 좋은 술은 좋은 사람과 함께 마셨다. 이때 술보다 대화를 더 즐겼다. 술이 주인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이었으며, 술잔보다 사람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다.
 
반대로 절제를 잃은 술은 예로부터 경계의 대상이었다. 술김에 내뱉은 한마디는 칼보다 깊은 상처를 남겼다. 술에 취한 한순간의 실수는 평생의 후회를 낳기도 했다. 건강을 잃고, 가정을 잃고, 친구를 잃는 일도 술 때문이 아니라 절제를 잃은 자신의 행동 때문이었다. 옛사람들은“술은 마시되 술에 먹히지 말라.”고 가르쳤다. 짧은 말이지만 술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일깨워 주는 교훈이다.
 
주님酒-이라는 표현은 술을 의인화한 문학적 비유이다. 종교에서 말하는 주님이 사랑과 용서, 위로와 희망을 상징하듯, 술 또한 절제와 품격 속에서 사람들에게 다양한 역할을 해 왔다. 술 한 잔은 서먹하던 사람을 친구로 만들기도 하였고, 오래된 오해를 화해로 이끌기도 한다. 평소에는 쉽게 꺼내지 못했던 감사와 사과의 말도 술잔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사랑을 고백할 용기를 내게도 하고, 지친 마음을 위로받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는 술 자체가 만들어 낸 기적이 아니라 술을 매개로 서로의 마음을 열고 진심을 나누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적인 변화다.
 
특히 막걸리는 이런 의미를 가장 잘 담고 있는 우리 민족의 술이다. 막걸리 사발 하나에는 농부의 땀이 담겨 있고, 노동자의 한숨이 담겨 있으며, 서민들의 웃음과 눈물이 담겨 있다. 그래서 막걸리는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나누는 술이다. 사발을 돌리며 서로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고, 한 잔의 술로 서로의 마음을 연다. 값비싼 술은 아니었지만 사람 냄새만큼은 어느 술보다도 깊다.
 
아무리 좋은 약도 지나치면 독이 되듯 술 역시 절제를 잃으면 더 이상 술이 아니다. 술은 기분을 업Up 시키지만 동시에 사람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건강을 해치고 정신줄을 놓게 만들어 사랑하는 가족에게 눈물을 안겨 준다면 그것은 더 이상 주님酒-이 아니라 술의 유혹에 스스로 무릎을 꿇은 결과일 뿐이다. 술은 사람을 시험하지 않는다. 사람 스스로가 자신의 절제와 품격을 시험하는 것이다.
 
술의 가치는 도수에 있지 않고 품격에 있었다. 얼마나 많이 마셨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마셨느냐가 중요하다. 또한, 얼마나 비싼 술을 마셨느냐보다 얼마나 따뜻한 마음을 나누었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술잔 하나가 사람을 웃게 만들기도 하고, 사람을 울게 만들기도 한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술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담아내는 가장 오래된 문화며,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가장 따뜻한 매개체다.
 
그러므로 술은 잘 마시면 보약이고, 잘못 마시면 독약이다. 술을 이기는 사람에게 술은 벗이 되고, 술에 지는 사람에게 술은 독이다. 술잔을 비울수록 마음은 채우고, 취하기보다 사람을 품으며, 술보다 정을 먼저 나눌 때 비로소 술은 인생을 더욱 향기롭게 하는 문화가 된다. 주님酒-의 기적은 술병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배려하고 아끼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속에서 피어난다. 그런 마음으로 마시는 한 잔의 술은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된다. 술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다리가 될 뿐만 아니라, 넘어진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디딤돌이 되기도 한다.
 
 
Print